[출근 6주 차 기록] "불안한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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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6주 차 기록] "불안한 안정감"

출근-집 기록

by 서닝구 2019. 6. 3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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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6주 차, 두 번째 월급을 받았다. 3개월 수습기간은 80%의 급여만 들어온다. 초반에는 나머지 20%의 양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월급을 확인하려고 모바일 통장을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적은 급여가 들어와 있었다. 계산해보니 그 금액이 80%가 맞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보다 낮은 급여를 받다니..! 

 

나의 이전 회사는 디자인 에이전시였다. 신입으로서 배운 것들이 아주 많았다. 대학교 디자인 과제와 실무 디자인 각각의 방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포스터, 편집물, 배너, CI, BI 등 많은 작업을 제시간에 해내야만 했기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이 성장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별로 없었다. 손이 빨라서 모두 제시간이 끝냈다. 나중에는 팀장님이 손이 빠른 나에게 일부러 한 프로젝트를 통째로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해낸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괜찮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혼자서 낳았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래도 이 곳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사원이 별로 없어서 휴가 각을 잡기가 힘들었고 자신의 업무가 끝나도 팀장님이 하고 있는 업무가 신입에게 도움이 된다면 옆에서라도 보고있거나 서포트를 해야 했다. 퇴근에 눈치를 봤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디자인 회사가 아니다. 전에 디자인 툴을 3개를 다뤘다면 이곳에서는 거의 1개밖에 다루지 않는다. 폭이 좁은 디자인을 하고 포트폴리오에 올리기엔 애매한 디자인들을 하기 때문에 초반에 걱정을 많이 했다. 이직할 때 많이 힘들 것 같고 디자인적으로 아직 많이 성장할 부분이 많은데 그것들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디자이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가 없는 입장이 되었다. 나는 이 곳에서 '디자이너'보다는 '노동자'의 단어가 더 어울리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이너'를 생각했을때 연상해내는 것과 내가 일하는 이미지는 좀 다르다. 입사 날 디자이너의 컴퓨터가 맥이 아닌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이 곳에 6주를 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이 회사의 분위기와 업무방식에 익숙해졌다. 내가 생각해온 디자이너가 아닌 노동자로서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디자인 회사를 다닐 때보다 스트레스가 없고 편하다. 비교적 깊게 생각할 필요 없고 창의적일 필요도 없다. 전엔 시안을 고안해내느라 잠도 안 왔고 꿈에서도 나오고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그래야만 했는데 이곳은 그럴 필요가 없다.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안정감이 나는 불안하다. 안정된 것이 과연 이상적인 것일까? 고인물이 되는 거 아닐까?

디자이너로서의 발전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회사가 하고 있는 일과 목표는 발전가능성이 크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결과물이 회사 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나름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내가 대학생, 사회 초년생때 이뤄낸 것들과 스펙을 보자면 난 그래도 내 능력이 아까운 것 같다. 이 곳에 안주하지 말고 더 배우고 이뤄내야겠다. 그래서 내일배움카드도 발급 신청했다. 능력이 쓰이지 않는다고 썩힐 순 없는 거다. 기나긴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고 배우고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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