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죽음> / '문학도 골고루'(리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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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죽음> / '문학도 골고루'(리뷰 2편)

독서 기록

by 서닝구 2019. 6. 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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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의 키워드가 '죽음'이었다면 2편은 '문학'이라는 것을 키워드로 잡고 쓰려고 한다. 사실 책 제목은 '죽음'이라는 것이지만 문학에 대해 생각해보고 느낀 점이 더 많다. 지적 허영심, 문학 중2병이었던 나의 지난 시절이 생각난다. 책을 몇 번 읽어봤다고 더 심오한 책을 찾던 시기가 있었다.

 

문학 중2병이었던 나는 <죽음>에서 나오는 장 무아지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문학세계에 매력을 느꼈다. 인물과 배경을 아주 깊고 디테일한 문체로 서술한 책들이 뭔가 멋들어지고 소수의 사람들만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다 읽어냈을 때 그 '소수의 사람들'의 소속감에 뿌듯했다. 내가 읽었던 구스타브 블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그러한 책들 중 하나다.

 

2권을 읽으면서 제일 재미를 느낀 부분이다. 상상력을 중시하는 작가 영혼들과 문제를 중시하는 작가 영혼들이 전쟁을 일으킨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작가 자신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내세워 전쟁을 하는 것이었다.

 

아군이 즉각 전열을 갖춘다. 쥘 베른은 대왕 오징어를,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를, 아시모프는 로봇을,

프랭크허버트는 거대한 모래 벌레를,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을, 브램 스토커는 드라큘라를,

톨킨은 호빗들을, 피에르 불은 총 들고 말을 탄 원숭이들을 불러온다. - 247p (2권)

 

조총을 든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장전이 빠른 권총으로 무장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뒤쫓고 있다.

플로베르의 엠마 보바리가 대니얼 디포의 로빈손 크루소를 유혹한다.

스탕달의 쥘리앵 소렐이 카프카의 거대한 바퀴벌레를 짓이기고 있다. 

크로미텐이 호빗들을 쫓아가 그물을 날려 잡으면서 소리친다. <꼬맹이들아, 이리 온!> - p.256 (2권)

 

사실 <마담 보바리>를 즐겁게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작가의 서술을 머릿속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배경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도 있지만 직설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다. 기승전결은 평탄했지만 엠마 보바리의 심정 묘사는 들쑥날쑥하고 소용돌이 같았다. 그러한 그녀가 로빈손 크루소를 유혹한다니 정말 잔인하기 짝이 없다. 지금의 나는 지적 허영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종류의 문학을 가리지 않고 접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죽음>에서 나오는 작가 영혼들의 전쟁에서 상상력의 편을 들어 응원했다. 엠마 보바리가 외도를 하면서 느끼는 엄청난 페이지 수의 감정은 어찌 됐건 상관없고 그 여자는 그냥 바람이 났고 정신병이 의심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마담 보바리를 읽으면서 정신적으로 꽤 힘들었던 것 같다)

 

저는 추리 소설도 읽지만 프루스트나 플로베르 같은 문장가들의 작품 <역시> 즐겨 읽어요.

그런데, 음악계에는 고전 음악과 록 음악을 다루는 매체가 따로 존재하는 반면

문학 매체들이 좋아하는 책은 모두 천편일률적이에요

······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문학의 다양성이에요. 그 자체로 나쁜 문학 장르가 있는게 아니라,

장르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을 뿐이에요. - p.40 (2권)

 

지금의 나는 문학을 골고루 읽고 있다. 문학의 다양성을 지향하자는 <죽음>의 메시지는 그런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는 소설이 되었다. 더 어렵고 심오한 책을 찾았던 것은 어찌 보면 독서를 전혀 하지 않았던 학생 시절의 나를 어떻게든 교양으로 메꾸려고 집착한 것일 수도 있겠다.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집착을 했다.

독서를 하는데에 '늦었다'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책을 읽던 내가 어느 위치에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양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책을 두세번 다시 읽는 까닭도 그곳에 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로빈손 크루소를 읽지 않았어도 지금 읽고 지금의 내 그릇에 맞춰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상상하고, 꿈꾸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멋진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 p.321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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